어쩌면 왠수 인지도 모르겠다.
'결시', '변명'도 모자라 '다시쓰며'에서 '다시 옮기며'까지 아직도 나는 이것을 놓지 못하고 질질 매고 있다.
'인형을 향하여'는 그간 내게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언제나 무언가를 정리할 때면 제일 먼저 그 처분에 골몰하는 거시기다. 생각해보면 참 사람이 칠칠치 못해도 이렇게 칠칠치 못할 때가 없다. 여적까지 그 먼 옛적 예기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옮김은 이전과는 다르게 참 재미있었다. 물론 시집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 속에 침잠해 잠시 정신을 놓을 뻔 한 기로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무엇이 보였다. 이전에 '인형을 향하여'는 내게 일종의 성지였다. 누군가 이 시집을 읽으며 내가 이야기하려 했던 것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거나 섣부른 질문 공세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만큼은 나의 적이 되기 쉽상이었다. 상대방이 비록 나의 울그락불그락하는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에 '인형을 향하여'를 옮기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인형'과 분리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쩜 이렇게 못 썼을까. 지금 나라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이 들었던 것은 빠져나갈 수 없는 판의 구도에 한발을 들여 놓은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지난날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어찌 감히 '인형을 향하여'를 비판한단 말인가? 그 비판에 맞서 새로운 논리를 만들고 또 치고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제 나는 인형을 놓았어' 하고 대미를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허술함과 질풍노도와 같았던 20대의 폭풍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장에서도 흥미로운 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 당시는 순수한 관념적 어휘나 단어를 사물과 동일시 하며 사용하던 버릇이 있었다. "진실처럼"과 같이 진실이 마치 인간의 집요한 관념에 의해 탄생한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움직이는 사물이라도 대는양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문장에서 이런 비슷한 성향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낮간지러운 수식과 현란한 표현의 무덤에 빠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건조함을 넘어 이걸 시라고 썼단 말이냐 하는 자조를 할 수 있었던 건 이제야 그 진면목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인형을 향하여'에 대한 내 사랑이 멈추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시를 읽으며 한동안 나는 말이 없었고 침몰할 뻔 했다. 어찌 생경해야 할 그시절의 일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나를 휩쓸고 흔들 수 있을까? '인형을 향하여'는 숨겨놓았던 교신부호의 암호를 재빠르게 해독해 냈다. 다행히 이제 그것들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할 수 없음으로 나는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쓸쓸해지는 그 뒷모습이 이제는 안타까웠다.

그 누군가는 이 시집을 보고 내게 말했다.
이것은 분명 당신이 경험한 이야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야기가 나오겠냐고.
그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온몸을 활활 태우며 나온 불꽃을 보았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인형은 잘 지내죠.
한때 의미가 있었던 그 이야기들이 지금은 왜소해 졌다.

아마도 또 어느 순간이 오면 나는 또 무언가의 이름으로 인형에 대해 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반복되고 불안하다. 하기야 힘겨울 때 숨어 들 그늘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집을 부리며 비빌 언덕 하나는 있어도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결시結詩 또는 변명'을 옮길 때는 마음이 바뀌었다. 창피했다고 할까. 무슨 변명이 그리 많았을까. 왜 그리 감출 생각만 한 것일까.

무슨 큰 비밀의 문이 숨겨진 듯 이렇게 외친 걸까.
"나의 미로를 한 바퀴 돌아 그 끝에 오면 조그만 문이 하나 있어요. 그건 사실 가짜예요. 자세히 보면 문 옆에 다른 벽이 하나 보여요. 그 어딘가에 진짜가 있죠. 한번 찾아보실레요."
무슨 특별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읽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이 불편하고 쓸모없는 변명을 다시 열어야 할까. 아직 블러그에는 그 내용이 닫혀있다. 아마도 며칠 후면 공개로 다시 바뀔 것이 분명하다. 결국 그것도 옛추억이니 읽고 재미있게 추억할 수 있는 재료가 되지 않을까.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시비 걸지 마시길.

이제 인형을 다시 정리했지만 아쉬움도 많다. 텍스트로 표현되는 '시詩'를 블러그로 옮기는 데는 지면에서보다 여러가지로 장애가 많았다. 블러그라기 보다는 웹 형식의 불편함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형을 향하여'를 다시 옮기면서 이번에는 왠지 잡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붙들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놓았다고 위안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욱 더 바짝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미로 속에 쳐 박아 두었으나 삶을 바꾼 이야기가 쉽게 잊혀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미로를 가끔은 들여다 보는 것도 왠지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같이 갈 수 있다면 가고, 언제든 교신을 해도 일방적이지 않은 좋을 관계가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문호리에서 윤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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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지금쯤 강릉행 기차는 떠나고 있으리라
찬웃음 남긴 사람 하나 실려
변덕스런 봄비에 젖어 있으리라

나는 고냥 배웅조차 못하고
거리에서
찻간에서
미니 스커트 여자 다리나 쫓고

바다를 향해 사람은 떠나고 있으리라
자유에 문을 열 듯
매어 둔 인생의 비밀을 얻 듯
훌훌 접어 둔 고뇌의 실타래 풀고 있으리라

불어 논 수많은 핑계의 하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의 풍선은 그 어느 때
의미 없는 낙엽처럼 이름 하나 모은 채
흩날려 떨어지리라

지금쯤 어느 터널 속에서
목을 길게 뺀 사람 하나
눈을 감고 있으리라
너와 내가 교치하는 그 영혼 속으로
풀어진 넋의 시선이 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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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새벽

악몽에 절은 지난 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벌떡 일어선 건
식은 땀에 젖어 있던 살가죽

폐부 깊숙이 더 깊숙이
못 피우는 담배를 지저문 채
흐느끼는 누군가 있다
술취한 채 나자빠진
만신창이 그가 울고 있다

떠날 때가 된 걸까
이제서야 마음이 아픈 걸 보면
몸이 뒤집히도록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보면

새벽 어느 역
겨우 창문을 열고
벌거벗은 시선을 하늘에 매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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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독한 마음으로
잊어버리기로 했다
한번쯤
모두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로 했다
무너졌던 마음
모으고
날이 갈수록
사라져 갈 거라면
예서 아예 문 닫기로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 마냥
훌 돌아서기로
다시 거리로 나서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 즐거워 하며
숨진 가슴 감춘……

이 모든 결심에
늘 마침표처럼 끝에 서는……
인형

아무 말도 없이
사죄의 단 한마디 없이
그냥 이렇게 떠나기로 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나그네가 되어 보려 한다
!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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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버려진 나와
감추인 나를 찾아
감감히 흩뿌리는 노을을 지울 때가 되었다

떠나간다는 것
무언갈 찾는다는 것
위선 같은 두꺼운 얼굴을 버리고
잔뜩 웅크린 어깨를 펴 보는……

그리고
분신처럼 엮은 나의 초상과
삶이 담긴 한편의 글과
그대에게 움켜 준 내 시간은
떠나가는 어리석은 미련이다

그 어디든
어느 시간이든
잊지 말아 달라는
바보 같은 외로움을 전하고픈 거다

아직
먼길이 끊이지도 않은 거친 장도 앞에
여린 마음으로 달랠 수 없는
낮선 이 두려움

그러나
이제 진정 떠날 때가 된 것은
미련과 외로움과 두려움이
가슴을 뚫고 맨살을 폐부로 만드는
움켜 설 따뜻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떠미는
푸른 하늘의 시선이 극極을 치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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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나 인혜 !
어쩜 왠 일이냐니
난 뭐 전화도 못해
그래도 정신을 좀 차린 모양이지
이제 대꾸도 하게
진짜 괜찮은 거야
정말이지
근데 여행 간다며
동해 !
얼마나
그런 대답이 어딨어
가 봐야 안다니
보호자가 꼭 있어야 겠는데
설마 이대로 행방불명되는 거 아니지
약속해!
아니면 나 따라간다
………… …………
………… …………

이젠 잊어버려
언니도 그걸 바랄거야
틀림없이
이번 여행이 이별 여행이 됐음 좋겠다
운명은 어쩔 수 없잖아
그건 누구 잘못도 아니야
듣고 있어
응!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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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간다
인형
화려했던 지난 그 바다로
너를 버리고
나를 버리고
허무를 만들러
이제
떠나간다

두려움
두려움

너와 나의 자취가 함께 묻어 있는
이 땅 거리 곳곳에
미칠 듯 떠오르는
그 추억들

무서워
무서워

말하기가 두려워
생각하기 고통스러
술취한 취객처럼
비틀거리며 흘러간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던가
약이 된다던가
푸른 하늘이 칼날처럼 내려앉는
나의 계절
그 바람 앞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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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능행 막차 하나요
아 아니 두·두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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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밤이면 네가 떠나던 그 객실 안이다
혼미한 나를 세울 때마다
쓸쓸히 흩어지는 네 모습
이제 꿈이 아닌 허무를 태우고 떠나는
하염없는 이 강능행 막편
식은땀에 젖은 놀란 가슴을 싸매고
살아 숨쉬려 애쓰는 반듯한 정신이 예 있다

인형
지금 네가 날 부르는가
네가 불러 가고 있는가
이제 이 이별의 혹독한 시련
네가 달래 주려는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의미 없이 굳어지고
어디쯤일까
여기는
아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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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


어머나 어서와요
왜 이리 뜸해
자주 오더니 영 소식이 없어 궁금했지
근데 그 참한 처녀는
으응 바빠서
아프다더니 이제 좀 났나
맨날 쓰던 그 방
물론 있지
자 열쇠
어딘지는 알지
좀 있다 내가 맛있는 거 올려줄께
그래 알았어요 쉬어요

' 얼굴이 좀 빠졌네
  싸우기라도 했나
  분위기 이상하네
  초상 치른 사람 마냥……'

뒤에서 들려오는 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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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오름, xdg]